문학과 과학에 세습제를 적용하면 이 두 분야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울까 생각하며 혼자 웃음을 짓곤 한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정부에도 적용시켜본다. 세습적인 통치자는 세습적인 작가만큼이나 모순적이다. 호메로스나 유클리드에게 자식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설사 있었다해도, 그들이 완성시키지 못한 작품을 아들이 완성하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토머스 페인,《인권 Rights of Man》(1751) 중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란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미야자키 고로의 '게드전기'에 대한 감상은 위 인용문으로 갈음하고, 어슐러 르 귄의 팬-으로 자처하기엔 부족하지만-으로서의 투정을 적어본다.
미야자키 고로에 대한 아쉬움
미야자키 고로는 미야자키 하야오에 큰 영향을 준 어스시를 자신의 손으로 영화화함으로써, 애니메이션의 거장인 아버지를 잇는다는 정통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아버지를 능가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내는데, 그러기엔 그의 깜냥이 너무 부족했다. 단지 지브리의 작품을 맡았기 때문이 아니라, 하야오가 영화화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어스시를 영화화한 것이기에 가상의 비교 -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를 피할 수가 없다. 최소한 어스시가 아니었다면, 다른 작품을 통해 데뷔하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한 아쉬움
미야자키 하야오의 '어스시'에 대한 사랑은, 그의 아들이 작품을 맡는 것을 막지 못함으로써 거짓으로 증명된 것이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들 정도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면죄부를 주려면 대표이사이자 프로듀서인 스즈키 토시오가 독박을 써야겠지.
ps. 지난 13일에 봤는데, 이미 기억이 희미해져서 -_-; 궁시렁은 안 쓰려고 했지만, 후배가 '게드전기' 봤냐는 문자를 날려서 괜히 끄적거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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