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과 연애

이놈의 휴대폰, 꼴도 보기 싫어! 도대체 어떤 인간이 이 따위 물건을 발명한 걸까. 어떤 장소,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통화 가능한 전화라는 건, 연애하는 데 있어서 - 원만히 진행되는 연애든 삐걱거리는 연애든 - 암적인 존재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가와카미 히로미, 「나카노네 고만물상」 p. 195 중에서)


휴대전화가 연애를 쉽게 만드는 것은 아마도 그것이 연애가 가져다주는 고통을 경감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리라. 앞에서 말한 연락이 안 되는 고통만 얘기하는 게 아니다. 착신되는 상대방의 이름을 확인하고 한두 달 동안 전화를 받지 않으면 연인을 엄청난 상처의 나락으로 떨어뜨릴 이별의 말 없이도 자연스럽게 관계를 정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히라노 게이치로, 「문명의 우울」중 <휴대전화의 연애학>편 p. 119 중에서)


일요일 새벽 2시가 되기 3분전,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번호는 0000. 이렇게 발신번호표시가 제한된 전화는 별로 받고 싶지 않지만, 이 밤중에 누군가 싶어 받은 순간 끊어졌다. 집안의 사고같은 긴급사태가 아닌 다음에야 이런 시각에 전화하는 게 허용되는 상대가 있다면 연애상대 정도일까? 나는 그렇지도 않지만...

난 집전화 밖에 없던 시절이나 무선호출기 시절에는 연애를 못했고, 핸드폰이 당연한 시절에야 비로소 연애 비스무리한 걸 했기 때문에 핸드폰이 없는 연애란 것을 잘 상상할 수 없다. 이러면 마치 만날 핸드폰을 붙들고 산 것 같지만 그렇진 않고, 오히려 통화는 거의 안 한 편이었다. 어릴적부터 전화라는 것 자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게다가 말재주가 없어서 긴 통화를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핸드폰과 연애를 연관짓는 것은 다름아닌 핸드폰 문자에 대한 기억들 때문이다. 80바이트 내에 어떻게 전하나 하는 고민도, 띄어쓰기없는 문자에 익숙해진 것도, 문자 한 통에 일희일비하던 기억도. (핸드폰 문자 한통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받은 문자를 엑셀파일에 일일이 기록해두기까지 했다!)

그런데 지금은! 연애를 안 하니까 지금 쓰는 핸드폰은 1년이 넘도록 도통 자판에 익숙해지질 않아서 가끔 밖에서 문자 보낼 때마다 애먹는다. ^^ 야심한 시각 탓에 잠시 감상적이 되어 불쑥 옛날 생각이 떠올랐나보다. 올해는 핸드폰 요금 때문에 고민 좀 해봤으면 하는 거랑 핸드폰 자판에도 좀 익숙해졌으면 하는 소망으로 결론없는 글을 끝맺는다.


ps. 지난주에는 앙케트 포스팅만 2개만 올리고 끝이네요. 오늘도 쉬면 이번주도 포스팅을 못할 것 같아서, 일요일 밤중에 끄적거리고는 안 올리려던 포스팅을 결국 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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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yner | 2008/01/21 16:17 | 일상잡담 | 트랙백 | 핑백(1) | 덧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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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핸드폰과 연애 휴대전화가 연애를 쉽게 만드는 것은 아마도 그것이 연애가 가져다주는 고통을 경감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리라. 앞에서 말한 연락이 안 되는 고통만 얘기하는 게 아니 ... more

Commented at 2008/01/21 18:0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MANEMIS at 2008/01/21 19:03
이상하게도 일본 소설을 읽다 보면 핸드폰에 대해서 않좋게 보는시각이 많더라구요.
꽤 오래된 일본만화에서도 휴대전화가진사람을 않좋게 보구요.
왜인지는 모르겟지만..
Commented by 브라킹 at 2008/01/21 20:35
한두 달 전화 안 받는거 정말 잔인한 짓이네요. 저런 사람들은 여기저기 분명히 많이 있겠죠? 전화 안 받는 자신은 고통이 줄겠지만 상대는 고통 속에서 얼마나 버티며 살지...
Commented by 에루 at 2008/01/21 21:56
하아;;; 요즘 그걸 당해서인지... 너무 시기적절하게 읽게된 구절이네요...
한달씩은 아니였지만;;;
Commented by 삼별초 at 2008/01/21 22:20
문자도 귀찮아서 메신저로 보내는 (...)
Commented by SeaBlue at 2008/01/21 23:33
그 '연애 비스무리한 것'에 대한 상세 소개를 좀...
Commented at 2008/01/22 00:1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 at 2008/01/22 01:47
통화를 통해 사람들은 괜히 많이들 싸우는 것 같아요.
정작 마주하고 이야기한다면 별거 아닐것도 많은데.. 왜 그렇게 전화기를 붙든 사람들은 배려를 쉽게 잊는지..
Commented by 안경교도 at 2008/01/22 03:05
하루에 세번이상 전화 안한다고 차인적도 있었고,
요즘은 한달 통화료가 10만원씩 나와도 좋다고 헤벌레하고 있는걸 보면...
중요한건 "사랑"이란 겁니다....
Commented by makibi at 2008/01/22 09:07
저도 문자 누르는게 아직 적응이 안되고 있습니다.. OTL
Commented by Layner at 2008/01/22 12:41
비공개 // 저는 아직 지우지 못했네요. 지금 보면 느낌이 어떨지...^^;

MANEMIS // 공공장소에서의 통화에 대해서 예의상 문제로 생각하는 경향도 있고... 무엇보다 혼자만의 시간을 없애버리니까 그런 것 같네요.

브라킹 // 설마 저렇게 잠수타는 분들이 많다고 생각하고 싶진 않네요. ㅠ.ㅠ 그건 진짜 상대방에게 못할 짓 같은데 말이죠.

에루 //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일이지만... 피치못할 사정이 있었다고 믿고 싶군요.

삼별초 // 저는 문자는 웹에서 보내고, 메신저는 거의 업무용으로만 써서요. ^^

SeaBlue // 할 얘기가 뭐가 있겠나? :)

비공개 // GPS! 유사시를 대비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만, 정말 깜짝 놀래켜주는 건 못하겠네요.^^ / 재밌게 봐주신다니 감사합니다.

BL // 얼굴을 마주보고 할 때랑은 좀 다르겠죠. 그리고보면 영상통화는 어떨지 모르겠네요. ^^

안경교도 // 어이쿠, 닭살이 돋으려고 하네요...^^ 10만원...제 6달 통화료군요.

makibi // 그냥 저는 웹에서나 보내야 할 모양입니다. :)
Commented by 두자씨 at 2008/01/23 10:02
문명의 우울'은 추천할 만한가? 제목은 맘에 든다만. 왠지 용두사미일 듯도 싶고.
Commented by Layner at 2008/01/23 13:38
두자씨 // 아, 히라노 게이치로의 '일식'은 읽어봤나? 내 취향의 작가는 아니지만 '문명의 우울'은 가벼운 에세이집이고 얇아서 지하철 출퇴근용으로 빌렸던 거라네. 제목처럼 거창한 건 아니고, 특별히 추천까지는 안 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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