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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책의 '종이'를 만든다 뭔가를 보다/듣다



"지금 큰일났어. 사내에서 종이가 없다고 난리야. 이시노마키에 큰 제지공장이 있는데, 거기가 괴멸 상태래. 우리 잡지도 페이지를 줄여야 할지도 몰라. 사사 씨는 도호쿠에서 종이가 만들어지는 거 알았어?"
『紙つなげ!』 (종이를 이어라!) 프롤로그 중

베테랑 편집자도, 논픽션 작가로 활약하는 필자도, 출판용 종이가 어디서 만들어지는지 몰랐다. 2011년 3월 11일의 동일본대지진 후, '종이' 부족 사태에 직면해서야 그들은 그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3・11 이후 2년이 지나 논픽션 작가 사사 요코는 이시노마키시의 제지 공장에 취재를 간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서.

일본에서 올해 6월에 출간된 사사 요코의 『紙つなげ! : 彼らが本の紙を造っている』 (종이를 이어라! : 그들이 책의 종이를 만든다.)는 3・11 동일본대지진 때 쓰나미에 휩쓸린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의 제지 공장(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공장의 최신, 동양 최대급의 제지기 N6가 아닌, 출판계 종이 공급을 위해 70년부터 가동된 서적용 종이(단행본, 문고본 본문, 코믹스 용지)를 만드는 '8호 제지기'를 우선적으로 반 년만에 재기동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출판업계가 8호를 기다리고 있다.", "출판사가 이시노마키를 기다리고 있다."

2013년 기준 일본 국내에서 생산된 인쇄・정보용 종이는 약 857만 6천 톤인데, 닛폰세이시(일본제지) 이시노마키 공장은 연간 86만 톤의 종이를 생산, 대략 1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제지는 전체의 40% 정도를 생산한다.) 만화 『원피스』, 『나루토』도 이곳 공장에서 만든 종이를 사용한다. 2013년 대히트작이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역시 이시노마키 공장에서 만든 종이를 사용했다.

처음 이 책을 읽기 전엔 제목의 'つなぐ'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냥 '잇다'일까? 그것보다는 2~3년은 걸릴까 싶었던 공장 복구 작업을, 반 년만에 출판계의 종이 공급을 위한 제지기를 최우선적으로 복구하는 과정을 그렸으니 '종이 공급이 끊기지 않게 해라!'라는 뜻일까, 이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紙をつなぐ'(종이를 잇다. 한국의 제지공장에서는 뭐라고 표현하는지 모르겠지만.)가 현장에서는 초지기 과정을 부르는 말이라는 걸 책이 거의 끝나갈 무렵 229쪽에서야 알려주는 것이었다! 물론 종이와 독자를 '잇고 싶다'는 저자의 의도에서 붙은 제목인 만큼 역시 이 책은 '종이를 이어라!'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출판대국 일본에서도 서점의 수는 줄어들고, 종이 소비량도 계속 줄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들은 일본의 출판의 최전선에서 마지막까지 분투할 사람들이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지 못했던 '종이'를 만드는 사람들이.

"문고본은 색이 다 달라요. 고단샤가 약간 노란 색, 카도카와가 붉은 색, 신초샤가 완전 빨간 색. 대개는 그냥 흰색이라는 이미지만 떠올릴지 몰라도 출판사는 문고본의 색에 '이것이 우리의 색이다.'하는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죠."


잡지 속에 있는 다른 질감의 페이지를 액센트 페이지라고 한다. 이건 '지금부터 다른 특집이 시작됩니다'하는 신호면서, 색다른 '넘기는 느낌'을 줌으로써 새롭게 흥미를 끌려는 연출이다.


"우리 건 특징이 있어서 말이죠, 서점에서도 보면 알죠."종이에는 생산자의 사인이 없다. 그들에겐 품질이야말로 웅변과 같은 사인이며, 그들의 존재 증명이다.

* 이 책이 어떤 종이로 만들어졌는지 다 나와 있다. 본문, 컬러 사진 페이지, 커버, 띠지... 본문과 컬러 페이지에 사용된 용지는 특히 이시노마키 공장 8호로 만든 것!)

재해 당시 가족과 집, 직장, 삶의 기반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위안이 됐던 '책' 이야기도 담고 있다.

구급 물자가 최초로 도착한 것은 14일의 아침이었다. 교토의 협력사가 가져온 것이었다. 그들은 한신대지진을 경험해서 재해 때의 불편함을 잘 알고 있었다. "이럴 때는 반드시 필요할 거다." 도움의 요청이 오기 전에 있는 대로 긴급 물자를 트럭에 싣고 이시노마키를 향해 출발했다. 통행금지 도로를 우회하면서, 갈 수 있는 길을 찾아 교대로 철야로 달려 사흘 후에 겨우 이시노마키에 도착했다. (중략)
본사에는 각 공장과 거래처에서 보낸 지원 물자가 속속 도착했다. 사옥 앞에 4톤 트럭을 대고 젊은 사원들이 총출동해서 구조 물자를 싣고 매일 재해지역으로 보냈다. 아이들에게는 슈에이샤에서 『원피스』, 쇼가쿠칸에서 『도라에몽』을 보냈다. (중략) 고단샤의 책 읽어주는 버스도 이시노마키를 향했다. 이야기의 힘은 많은 아이들에게 힘이 되었다. 덧붙이자면 어른들을 위한 책도 많이 보냈다. 98세의 시인 시바타 도요의 『약해지지 마』 등이었다. 이 시기, 어른들에게도 책이 필요했다.

이 부분에선 3・11 직후, 잡지 최신호가 들어오지 않는 센다이의 서점에 한 손님이 야마가타현에서 사와서 제공한 만화 잡지 '주간소년점프'를 100명도 넘는 아이들이 봤다는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원피스' 최신 연재분을 보기 위해서, 10km 넘게 자전거를 타고 와서 본 소년도 있었다. 책이 얼마나 그들의 삶을 지켜주었는가! '이제 공간 문제 때문에 종이책은 안 살 거야, 전자책 만세!'를 외치는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고 눈물을 흘렸다.

"딸과 아들에게 인생 마지막에 한 권을 준다면, 종이책이었으면 합니다. 메모리스틱은 말이 안 되죠. 어릴 적부터 딸을 서점에 데리고 가서 '아빠 책이다. 멋지지.'하고 자랑을 했습니다."





ps. 이 책은 출판산업의 큰 축이었던 제지공장의 부흥 이야기같은 미담 뿐만 아니라 3・11 때의 끔찍했던 현장과, 잘 알려지지 않은 무법지대였던 이야기, 흉흉했던 루머까지 다루고 있다. 일본인들 모두가 미담의 주인공은 아니었다. 챕터 1에서는 3・11 당시, 공장을 나와 대피하면서도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다가 금방 온 동네가 쓰나미에 휩쓸리는 모습을 보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생히 그리고 있다. 사람들을 구하면서도, 역부족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돕지 못하고 죽는 걸 방치해야 했던, 더 이상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못하고 비명이 잦아드는 걸 지켜봐야 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는다. 그리고 어려움을 이겨내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한참 진행된 후반부에서는 챕터(7장) 하나를 할애해 공장이 아닌 이시노마키시 한 주점의 주인의 경험을 통해 당시 아름답지만은 않았던 현실을 다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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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홍차도둑 2014/09/20 14:07 # 답글

    초지기에서 종이가 만들어지는 것은 펄프 원액이 계속해서 길~ 게 이어가는 형태이기 때문에 일본에서 초지기 과정을 그렇게 부르는 것 같기도 하네요.
    독자와의 관계를 '이어가다'라는 뜻도 되겠지만 '종이를 만들어라!'라는 뜻도 되는 여러 뜻이 함께 들어있다고 해도 될거 같습니다.
  • Layner 2014/09/22 23:14 #

    예, 참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는 제목이 될 것 같습니다. 한국엔 나올 일이 없을 것 같아 아쉽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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